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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08.08 02:53

네가 그런 선택을 했을 때 울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 아니, 애초에 네가 그런 일을 저지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 너는 착하고, 따스하고, 자기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하던 아이였지. 그런데 네 목숨을, 나를, 모든 걸 버릴 만큼 그게 중요했던 거야? …1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리워. ‘그곳’에 있는 건 네가 아니야. 진짜 너는 어디 있어? 제발 돌아와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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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어깨 위에 얹혀 있던 푸름의 손이 툭 떨어졌다. 그의 등에 기댄 푸름의 얼굴은, 마치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어제 탐색 후 기록을 정리하던 시온은 무덤덤한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술에 잔뜩 취한 채 눈을 감은 정푸름이 서 있었다.

“또 술 마셨어요?”

몽롱한 정신의 푸름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습관을 아는 시온은 한숨을 쉬며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팀에서 누군가 죽을 때마다, 진탕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는 버릇이 있었다. 한평대학병원 탐색 중에 실종된 연우가 한평지하상가에서 화분으로 발견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 때문인가….

“연우가 죽었어.”

붉어진 얼굴과 쉰 목소리의 푸름이 중얼거렸다. 남한테 하는 말인지, 아니면 혼잣말인지 헷갈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알아요.”

시온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푸름은 그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계속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혼잣말이었나 보다.

“그때 내가 지휘했더라면 달라졌을까…. 하율이가 아니라 내가 지휘했더라면 지침을 어기지 않았을 텐데. 아니, 애초에 그 상황에서 탈출을 시도하게 했던 게 잘못이었나….”

“하아…. 저기 앉아서 좀 쉬세요. 이미 죽은 사람인데, 지금 와서 생각해 봤자 의미 없어요.”

매번 사람이 죽을 때마다 이러는 푸름의 행동이 질린다는 듯 시온이 한숨을 내뱉었다.

“이미 죽은 사람….”

푸름이 중얼거리며 기계처럼 몸을 움직였다. 소파에 앉아 시온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 너머, 시온은 여전히 태연한 얼굴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래, 넌 항상 그랬지. 정푸름이 들릴 듯 말 듯 조용히 말했다.

“너는 아무렇지도 않아?”

푸름이 물었다.

“네.”

시온은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푸름은 자리에서 일어나 시온이 작업 중인 컴퓨터의 전원 코드를 확 뽑아버렸다.

“이런 미친!”

시온이 재빨리 코드를 다시 꽂으며 푸름을 돌아봤다. 화가 난 듯한 얼굴의 정푸름이 그의 뒤에 서 있었다.

“미친 건 너겠지. 내가 뭘 물어보는 줄 알고 그런 대답을 해?”

“왜 또 이러는데요?”

“너는…. 너는, 네 형이 죽었을 때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렸잖아.”

“11년 전 일이에요. 옛날 일을 왜 꺼내요?”

“그게 문제가 아니야. 걔 죽고 나서 네가 한 말! 걔가 자살한 다음 날 ‘나약하니까 그런 선택이나 하는 거지’라고 말한 거 기억은 해?”

시온은 억울했다. 틀린 말도 아니고, 벌써 11년이나 지난 옛날 일인데 왜 이러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왜 아직도 그걸 슬퍼하는 거지?

“그게 왜요? 맞잖아요. 그리고 솔직히 우리 팀에서 사람 죽을 때마다 이렇게 힘들어하는 거, 그리고 그 슬픔을 저한테 강요하는 거 별로예요.”

“…강요?”

“네.”

무덤덤하고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게 뭐가 잘못인데?라고 반문하는 듯한 태도였다. 백시온은 태생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켜봐온 정푸름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감정은 강요하는 게 아니야. 이건 당연하게 느껴야 하는 거야. 누군가 죽었을 때, 슬프고 안타까운 건… 그건 인간이라면 당연한 거라고.”

“지금도 한국에서만 하루에 수백 명이 죽고 있어요. 그 죽음 하나하나에 다 의미 부여하면서 슬퍼할 거예요?”

“네 형이 죽는 거랑 모르는 남이 죽는 게 같아?”

“죽음은 다 똑같죠. 다 숫자일 뿐이에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숫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시온이 덧붙였다. 그의 태연한 표정과 태도에 푸름은 힘이 빠진 듯 소파에 주저앉았다. 깊은 생각에 잠겨 침묵하던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말할 수가 있어?”

“죽었잖아요. 그럼 끝이죠. 슬퍼하든 말든 죽은 사람은 되돌아오지 않아요! 감정 소모는 시간 낭비에요. 비효율적이라고요.”

시온은 무미건조한 얼굴로 다시 컴퓨터 작업을 시작했다. 푸름은 아무 말 없이 그런 그를 응시했다. 백시온을 향한 두 눈은, 마치 사람이 아니라 인간의 가죽을 쓴 무언가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래도 인간이라면… 가끔은 비효율적이어야 해. 그러니까 오늘 연우 장례식은 꼭 와.”

그녀의 말에 시온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여전히 기계적으로 자판기만 두드리며 일을 하는 그를 본 푸름은 질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푸름이 떠난 후 시온은 잠시 작업을 멈췄다. 손가락을 공중에 멈춘 채, 그는 모니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응시했다. 죽은 형의 얼굴과 닮아 있었다.

[ㄱ팀 나연우 - 사망 확정/시신 회수 성공]

흰 화면에 검은 글자가 떠올랐다. 단순한 문장 하나지만 누군가는 이 한 줄을 보고 울었고, 충동적인 행동을 했다. …형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죽기 직전까지 자신이 아니라 남을 생각했던 형은 여기서 버틸 수 있었을까?

“아니.”

그가 마음속 질문에 대한 대답을 했다. 형이라면 분명 끝까지 자신을 탓하다가 결국 멍청하게 자살했겠지. 뛰어내리는 직전까지 다른 사람을 생각했던 그때처럼. 살아남는 게 이기는 거고, 그게 옳아. 옳은 거야. 내가 틀린 게 아니라 형이 멍청했던 거라고.

잠시 후 서류 작업을 모두 끝마친 시온이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핸드폰을 열어 문자를 확인해 보니 나연우의 장례가 열리는 장례식장 주소가 그의 팀장으로부터 와있었다. 푸름의 말을 떠올린 그는 기숙사에 들려 검은 양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후 곧장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그가 장례식장에 간 건 죽은 동료에 대한 애도라든지, 푸름이 했던 말 때문이라든지,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동료의 죽음인데도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이상하게 볼 테니까, 그러니 다른 사람들에게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 가야 한다. 이 이유가 전부였다. 동료를 잃은 슬픔도 죄책감도 미안함도 그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앞으로도 백시온은 누군가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저 사람인 척 겉으로만 감정을 흉내 내며 담담히 살아갈 것이다. 그뿐이다.


댓글 8

옛날에 올렸던 글 약간의 수정 후 재업

피드백이나질문등등등 받습니다


삭제된 댓글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ღˇ◡ˇ*)♡


좋은글,멋진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잘읽었어용!!


오와 대박 ㅠㅠ 이렇개 집중해서 읽은적 처음이야!! ㅋㅎㅋㅎㅋ 재밌었어 고마워


시온이도 사연이 있었군요...제가 사랑하는 나폴리탄 괴담 캐릭터들의 서사와 설정을 하나하나 풀어서 매력적인 소설로 써주시니 저는 그저 그랜절을 바칠 따름입니다🙇‍♀️🥹💗


너무 길어서 못 읽겠어유..ㅠ


삭제된 댓글입니다

오 나중에 수정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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